소득은 줄고 빚은 늘고
가계부채 규모가 갈수록 늘면서 국내 경제의 심각한 잠재적 불안요인으로 부각되고 있다. 가계부채는 포괄 범위에 따라 두 종류로 파악된다. 가계신용과 개인부채가 그것이다. 가계신용은 순수하게 가계만을 대상으로 하는 데 비해 개인부채는 여기에 소규모 개인기업과 민간비영리단체를 포함한다. 개인부채에는 증권회사, 연금기금, 대부사업자 등으로부터의 자금 조달이 포함되어 있는 반면 가계신용은 이를 제외한다. 따라서 가계부채의 실상을 보다 정확히 파악하려면 이 두 가지를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 최근 가계신용이 사상 처음으로 800조원을 넘었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돼 시장을 놀라게 했다. 개인부채는 이보다 훨씬 규모가 커 작년 말 940조 원에 달했다. 올해 들어서도 가계신용이 증가한 점을 감안하면 개인부채는 연중 거의 1,000조 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추정도 가능하다. 이는 국내총생산(GDP)과 거의 유사한 규모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부풀고 있는 가계부채가 조만간 상환능력을 벗어나 금융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전체적으로 가계가 보유한 금융자산 규모가 부채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금융자산/부채’비율은 2.3배이며 이는 꾸준히 상승하는 추세다. 그렇다고 가계부채가 끊임없이 늘어나는 것을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가계부채는 구조적 취약성을 지니고 있어 자칫 잘못하면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훼손할 수 있는 위험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첫째, 가용 소득에 의한 부채 상환 능력을 나타내는‘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비율이 우리의 경우 2010년 146%로 미국의 120%대보다 월등히 높다. 올해 들어 물가가 급등하면서 국내 실질 가계소득은 감소하고 소득보다 지출이 많은 적자 가구 비율은 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빚은 느는데 소득 수준은 떨어지니 부채상환 능력은 갈수록 약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둘째, 채무 상환 능력이 취약한 저소득층의 가계부채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점도 부담스러운 요소다. 상호저축은행·신용협동조합과 같은 서민 금융회사들의 가계대출 규모가 급속히 확대되고 있는데다 신용등급이 낮은 계층의 카드대출도 증가 하고 있다.
셋째, 집을 구입하는 데 지나치게 과도한 대출을 받은 수도권 30∼40대들의‘하우스푸어(house poor)’비중이 높은 점도 걱정거리다. 하우스푸어는 무리한 대출로 집을 마련하였으나, 원리금 상환으로 가처분소득이 줄어 빈곤하게 사는 가구를 뜻한다.
하우스푸어의 규모
위에 표를 기준으로 하우스푸어의 규모를 추산한 결과, 2010년 현재 총 1,691만7천 가구 중 주택보유가구는 1,070만5천 가구이며, 이 중 광의의 하우스푸어는 14.7%인 156만9천 가구로 총 가구원수는 549만1천 명인 것으로 추정된다. 협의 기준은 10.1%인 108만4천 가구로 총 가구원 수가 374만4천 명이다. 적어도 10가구 중 한 가구는 집을 구입하면서 살기가 힘들어진 셈이다. 이를 소득수준별로 보면 중산층에 해당하는 소득 3분위와 4분위의 하우스푸어 비중이 가장 높고, 연령별로는 30~40대가, 지역별로는 수도권이 비수도권보다 월등히 높다. 주택종류별로 보면 아파트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부채 상환능력은 높이고 거래는 활성화시켜야
가계대출 유형과 상환 방식도 가계부채 문제의 심각성을 더한다. 국내 가계부채는 대부분이 시중 금리 변화에 따라 이자 부담이 달라지는 변동금리 조건이고, 상환 방식은 만기가 되어야 원금을 갚는 만기 일시상환 대출형태가 대부분이다. 원금 상환 없이 이자만 갚는 대출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금리가 오르면 대출 상환 부담은 가중되는 불안정한 부채 구조가 고착되어 있는 것이다. 가계부채의 이런 특성 때문에 경기침체가 심화되거나,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고, 금리가 빠르게 올라가게 되면 서민 가계대출 상환능력이 급속히 상실되어 금융 부실이 확산되고 내수 경기는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
가계부채가 내포하고 있는 불안 요인을 선제적으로 해소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최상의 방안은 서민 경기의 활성화다. 서민들의 일자리를 늘려 소득을 올려주어 더이상 빚을 지지 않게 하고 상환 능력을 높여주는 것이다. 일자리 창출이 기대되는 서비스업을 비롯, 신성장 동력을 육성하기 위해 국내외 기업들이 투자 여건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보다 경주해야 할 당위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부동산 가격의 급락을 막을 수 있도록 거래 활성화를 유도할 수 있는 규제 완화 대책도 추가 검토해야 하고, 점진적 금리인상을 통해 급격한 상환 부담 증가를 회피하는 한편 부채 증가도 억제해야 한다. 이와 함께 부동산 자산 유동화를 통해 버거운 부동산을 떠안고 살지 않도록‘부동산 역모기지제도’등 다양한 금융상품을 개발하는 방안도 적극 추진해야 한다.